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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gal Philosophy

'권리'라는 말의 적절한 사용을 발견하는 맥락

'권리'라는 말의 적절한 사용을 발견하는 맥락

내가 권리 이론에 대한 개설서를 쓴다면 서두를 다음과 같은 내용으로 시작할 것 같다. 죽기 전에 쓰지 못할 것 같기도 해서 생각난 김에 습작을 남겨본다. (개인적으로는 자격부여(entitlement)로써의 권리 개념보다는 어떤 상태(state)로써의 right나 das Recht 개념이 관련한 사태를 더 잘 설명한다고 생각하고 전반적인 논의의 이동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그런 이야기를 개설서 앞단에서 전개하면 몇 명이나 심각하게 읽을까 싶다.) 조금 수정할 때마다 자꾸 누더기가 되는 건 어쩔..




‘권리’라는 말은 언제 중심적인, 또는 본래적인 의미로 사용되는가? ‘권리’라는 말을 사용하는 수많은 맥락들 중, 어떤 맥락의 문장들 속에서 그 본질적 의미로 사용되고 있는지 알아야, 그런 문장들 안에서 권리 개념의 본질과 속성을 고민하고 비판해 볼 수 있다. 우리는 어떤 A라는 사람을 죽여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왜 그런가? 그 이유를 설명할 때, “A는 죽임을 당하지 않을 <<권리>>가 있기 때문이다”라고 설명하고자 한다면, 권리라는 논의에 발을 들이게 되는 것이다. 다르게 설명할 수도 있다. “A를 죽이는 것은 잔인하고 나쁜 행위이기 때문이다.”라고 설명한다면, 이는 반드시 A가 어떤 권리를 가진다는 것을 전제하는 것이 아니다. “나는 사람을 죽여서는 안 되는 의무를 가지고 있으며, A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정도로 설명한다면, 이는 권리보다는 내가 가지고 있는 어떤 행위의 <<의무>>에 기초해서 그 이유를 설명하는 것이다.* 사람들을 서로 죽이지 않을 때, 전체 사회의 복지나 공리가 최대화 또는 최적화된다는 것을 증명하고, 한편 전체 사회의 복지나 공리를 최대화 또는 최적화시키는 행위가 행위의 의무를 구성한다고 설명한다면, 이 역시 권리를 중심에 두고 있는 설명으로 보기는 어렵다.

 

*[이와 같은 권리 개념이 확보되고 나서야 호펠드 등이 검토하고 있는 의무와의 [인과관계(causal relation)니] 상관관계(correlation)니 하는 관계의 성질도 그제서야 고민해 볼 수 있는 것이다. 한편 ‘correlation’을 ‘correspondence’와 의미 구별이 어려운 ‘대응’이나 ‘상응’으로 번역해 온 관행은 호펠드가 강조하려고 했던 상관관계의 의미를 포착하지 못한 것에 기인한 것으로 보인다. 일단 호펠드는 두 개념간의 관계가 인과관계로 보기는 어려운, 하지만 함께 움직이는 경향성이 있는 변수처럼 보았다는 것은 분명히 하려고 했다는 점을 인식해 두기로 하자.]

 

물론 권리를 중심에 두지 않는 설명들도, ‘권리’라는 용어를 사용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공동체가 전체 사회의 복지나 공리를 최대화 또는 최적화시키기 위해 개인에게 어떤 제도화된 자격을 부여하는 역할과 간섭을 수행하는 것이 정당화될 뿐만 아니라(예를 들어, 정치도덕으로서의 공리주의), 또한 체계가 잘 질서정연하게 정돈된 사회에서 전체 사회의 복지나 공리를 최대화 또는 최적화시키기 위해서는 개인에게 특정한 제도화된 자격들을 부여하고 이를 중심으로 제도를 구성하는 것이 효과적이라는 점이 밝혀진다면(참고, 코즈 정리), 그 공동체의 대표기관들이 그러한 “제도화된 자격부여”, 즉 흔히 “법적 권리(legal rights)”라고 불리는 것을 중심으로 제도를 구성하는 것은 정당화될 수 있다(예를 들어 [자유지상주의가 아닌] 정치도덕으로서의 공리주의에 기초를 둔 자유시장경제질서나 소유권 제도의 정당화). 그러나 이때 권리를 중심으로 한 제도 구성이 정당화되었다는 것은, 근본적인 의미에서 권리를 중시하거나 권리를 근저에 둔 설명을 제공하는 것이라기보다는, 전체 사회의 복지나 공리의 최대화나 최적화를 근저에 둔 설명이라고 할 수 있다. 이때 ‘법적 권리’에서의 ‘권리’는 어원을 (도덕적) 권리에서 빌려왔지만, 본질적으로 다른 대상을 지칭한다. 이들 설명에서 권리라고 보이는 것들에 의한 정당화는 궁극적으로 다른 근본적 설명들로 환원된다.
오직 법적 권리의 정당화의 근거를 도덕적 권리의 특수한 위상에서 도출하는 견해에서만 ‘권리’의 어원적 의미가 실질적으로 존재하는 법적 권리들에 대한 설명 안에서도 일부 남아있게 된다. 이 견해의 관점에서 볼 때 정당하게 부여된 “법적 권리들”, 즉 구체화된 제도적 자격부여 중 많은 것들은 (도덕적) 권리에서 직접 유래하지 않은 것들일 수 있다. 그러나 이 견해의 대부분의 옹호자들은 여전히 그러한 제도적으로 부여된 자격들에 대한 정당한 지위들을 갖게 만드는 것, 제도 안에서 보호될 자격을 근본적으로 기초한 것은 도덕적 권리라고 설명할 것이다.
요약하자면 <<권리를 중시하는 설명>>이란, 이러한 설명들의 <<가장 근저에>> 특정한 사람의 권리가 놓여있다고 생각하는 설명이다. 그리고 이러한 설명 안에 등장하는 권리 개념이 (도덕적) 권리((moral) rights)의 본래적 개념을 발견하는 토대가 된다. 그러한 대상의 존재가능성이 설사 회의적인 것으로 밝혀지더라도 그러한 논의의 토대는 이러한 권리중심적 설명에서 가장 용이하게 발견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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